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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의 역사 왜곡이 남긴것. 일본의 역사 왜곡이 남긴것. 1919년 3.1 독립운동 직후 제 2대 조선 총독 사이토가 발표한 조선 총독부의 "교육시책"이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직후, 조선 총독부 초대 총독으로 부임한 테라우치 마사타케는 불온서적을 수색한다며 군경을 동원하여,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전국 각지에서 20만권의 사서를 강탈, 소각하였다. 그리고 1916년 부터 3년 동안 조선사를 편찬한다는 명목으로 도 한차레 사적을 거둬들여 그 가운데 희귀한 비장 사서들을 일본으로 가져가 깊이 감춰 두었다. 이 사실은 일본 궁내성의 왕실 도서관에서 12년 동안 근무했던 박창화(1889~1962)에 의해 폭로된바 있다. 조선 총독부의 교육시책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 더보기
세계사 속에서 사라진 한국 고대사. 세계사 속에서 사라진 한국 고대사. 한국은 인류 기원의 시원국이자 도주국이지만 서양 어러나라의 역사 교과서에는 고대 한민족의 실체가 단 한줄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다. "한반도의 북부는 한사군을 통해 중국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남쪽은 임나일본부를 통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터무니없는 역사가 마치 진실인양 그대로 유포되고 있다. 한국의 역사는 머리와 사지가 절단된 불구의 몸이 되어 환국→배달→고조선으로 부터 내려온 9천년 역사가 "1천년 역사로 전략"하고 말았다. 더보기
동이족의 "요하문명"으로 중국사 새로 썼다. 동이족의 "요하문명"으로 중국사 새로 썼다. 1980년대 이후 중국 고고학계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동이족東夷族의 영역이었던 요하遙河 대릉하大凌河 유역에서 황하 문명 보다도 시기적으로 앞서며 질과 양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문명의 증거물들이 무더기로 출토 되었기 때문이다. 1982년 사해査海, 1983년 흥륭와興隆窪 에서 발견한 주거 유적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집단 취락지로서 각각 "중화中華 제일촌," "화하華夏 제일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취락이 조성된 시기인 8200~7600년 전 이곳은 화하족의 중심지가 아니었을뿐 아니라 출토된 유물의 빗살무늬 토기, 옥장식(귀고리) 등도 동이족, 나아가 한반도 문화 유형과 더 가까웠다. 뒤에 이어지는 이른바 홍산紅山 문화 (6500~5000년 전)와 하가점.. 더보기
대한제국의 성지 원구단圓丘壇 대한제국의 성지 원구단圓丘壇 고종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1896년 정동 아라사(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피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아관파천"사건이라 하며, 이 사건으로 인해 정동이 한국 근대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고종은 아라사 공사관에서 1년여를 머무르며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의 미래를 고민했다. 당시 고종은 법궁의 역할을 하지않고 있던 덕수궁(경운궁)의 중건을 지시, 1897년 덕수궁으로 이어한다. 고종은 덕수궁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해 대내외에 근대적 자주국가임을 선언했는데 이 사실을 하늘과 땅 그리고 종묘사직에 고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게 되는데 바로 이곳이 "원구단圓丘壇"이다. 원구단은 외세 열강들의 침략 속에서 "주권국가"인 대한제국을 공식화한 역사적인 공간이었.. 더보기
중국의 역사왜곡 "백두산은 중국문화 중요 발원지" 중국의 역사왜곡 "백두산은 중국문화 중요 발원지" 중국 정부 차원의 동북 공정을 이어받아 랴오닝 성의 "요하 문명론"과 지린 성의 '장백산문화론"이 한국사 공략의 좌 우 협공을 펼치고 있다. 고구려사 전공자로 중국 동북공정을 비판해온 조법종 우석대 교수가 27일 서울 역사 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 백산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장백산 문화론의 비판적 검토'에서 이같은 맥락의 분석을 제기 했다. 장백산 문화론은 중국이 백두산(장백산) 일대 개발을 추진 중인 "백두산공정"을 역사 문화적으로 뒷바침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거다. 요하문명론은 동호-숙신-예맥을 아우르는 고대 문명을 중국사로 편입 하려는 시도이다. 조 교수는 2000년 결성된 지린 성 장백산문화연구회가 주도하는 이 문화론이 백두산을 "중국 문화의.. 더보기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식민사관 우리나라 청동기 새대는 언제부터?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식민사관 우리나라 청동기 새대는 언제부터? 교과서에서 전하는 청동기 시대의 기술의 문제와 기 배경을 살펴보면 청동기 시대가 BCE 233년 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는 믿지 못하는 허구이며 신화가 된다, 여기에도 식민사관이 숨어있다. 생각해 보기 청동기 시대에 와서야 국가가 세워진다는 것은 한국민이 갖고있는 독특한 관점이다. 이는 일제 식민 사학자들이 단군 조선을 부인하기 위해 창조한 이론인데, 한국 사학계 주류는 아직도 청동기 시대때 비로소 국가가 건국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국사 교과서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이덕일, 김병기 지음 역사의 아침 2006년 18쪽) 현제 우리 나라의 교과서 고조선은 청동기.. 더보기
환단고기가 전하는 역사의 진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역사의 진실. [환단고기[삼성기 상] 단군왕검의 조선 개국. 후에 신인왕검이 강도우불함지산단목지허하시니 後에 神人王檢이 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하시니 기지신지덕과 겸성지인이 내능승조계천이건극하사 외탕유열이어시늘 其至神之德과 兼聖之仁이 乃能承詔繼天而建極하사 巍蕩惟烈이어시늘 구환지민이 함열성복하야 추위천제화신이제지하니 九桓之民이 咸悅誠服하야 推爲天帝化身而帝之하니 시위단군왕검이시라. 복신시구규하사 설도아사달하시고 是爲檀君王儉이시라. 復神市舊規하사 設都阿斯達하시고 개국하사 호조선하시니라. 開國하사 號朝鮮하시니라. ★ 이후에 신인神人 왕검이 불함산不咸山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墟)에 내려오셨다. 왕검께서 지극히 신성한 덕과 성인의 인자함을 겸하시고, 능히 선대 환인桓因 환웅桓雄 성조의 법을 이어 받..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