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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의 맥

신교神敎에서 뻗어나온 유교儒敎

신교神敎에서 뻗어나온 유교

 

공자孔子는 요순문화의 실체를 최대한 드러내고자 하였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동방의 배달족 출신으로 신교 문화를 계승한 주인공들이다.

때문에 그 문화의 골간에는"상제의식'이 무르녹아 있었다.

본래 원시 유교 에서는 섬김 "하늘'은 인간과 만물에게 직접 천명을 내리는 

인격적인 하늘(상재천)로서 만물을 주재하는 "주재천主宰天', "인격천"이었다.

상제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천명을 내리며, 인간과 신명들의 상벌을 

주관하시면서 감정과 의지를 드러내시는 "인격신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는 스물일곱 살 되던 해에 공자는 동이족의 천자제도를 위시한

여러 관제官制와 문헌을 공부 하였으며, 그에게 배움을 열어 준 스승이

담국郯國의 군주였던 담자郯子였는데, 담자는 동이족 출신이다.(춘추좌전).

또한 공자는 장홍萇弘이라는 인물에게 음악을 배우고, 사양師襄이라는

노나라의 악관에게 거문고를 배우고, 노담老聃에게는 예를 배웠다.

주나라의 대부 장홍을 제외한 두 스승은 모두 동이족의 주된 근거지인 시경,

중국 산동 지역 사람들이며, 공자는 동이족 출신이거나 최소한 동이족 문화권에

살고 있던 인물들로 부터 가르침을 받아 자신의 사상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공자가 이상 사회의 모델로 삼은 주나라는 정치적, 문화적으로 고조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나라로. 하, 상, 주 3대 왕조는 고조선의 신교문화권에 속한,

하상주夏商周 사람들은 고조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제 신앙을 하였다.

 

주나라 때의 상제 신앙은 공자가 편찬한 유가 경전인 <시경>, <서경>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주나라의 왕들은 하늘(天)은, 인간에게는 천명을 내리고

인간이 덕을 잃으면 언제라도 그 천명을 거두고 재앙을 내리는 인격적인 존재로 대하였다.

푸른 하늘을 상제님을 대변하는 상제천上帝天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주나라를 자신의 이상으로 삼은 공자가 신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공자는 “옛 것을 서술하였으나 창작하지 않았으며, 옛 것을 믿고 좋아했다(述而不作 信而好古)”

라고 술회하였다. 공자가 말한 ‘옛 것’이란 무엇이겠는가.

또 <중용>의 저자인 자사子思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공자가 “요순의 도를 따르고

문왕과 무왕의 법을 지켰다(祖述堯舜 憲章文武)” 라고 하였는데, 요임금과 순임금은

동이족 혈통으로 고조선의 신교 문화권에 예속되어 상제신앙을 한 인물이며, 4,300년 전

순임금이 태산에 올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린 기록이 <서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유교에서 상제 신앙을 찾아 보기기는 어렵다.

공자는 자신이 지은 [주역]<설괘전>에서 "상제님이 동방에서 출세하신다(帝出乎震)" 라는

말을 할 만큼, <주역> 공부를 통해 천리를 꿰뚫어 삼신상제님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자 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에는 하늘을 인격적 상제천보다

자연천, 도덕천 개념으로 많이 이야기하였다.

공자 이후에 상제님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면서 유교의 하늘은 점점 이법천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한무제 때 유학자 동중서는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호삼신出乎三神”(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이라는 신교의 가르침을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어천出於天”([한서]<동중서전>) 으로 바꾸어 버렸다.

‘도의 큰 근원이 하늘로부터 나왔다’ 로 바꾼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유교는 삼신사상에서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남송 때 이르러 제2의 공자라 불리는 주희朱熹(1130~1200)는 ‘우주의 시원이자 주재인 리理가

바로 태극太極’ 이라는 형이상학적 이론을 주장하였으며, 우주 이법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하였던

그는 “그것은 학자가 말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學者皆莫能答<주자어류>)” 라고 하여

상제님의 존재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였다.

그 후 유교는 더욱 사변적인 이론에 치우치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유교에서는

신교의 상제 신앙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상생출판 환단고기 역주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