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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식민사관 우리나라 청동기 새대는 언제부터?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식민사관  우리나라 청동기 새대는 언제부터?

 

교과서에서 전하는 청동기 시대의 기술의 문제와 기 배경을 살펴보면 청동기 시대가 BCE 233년 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는 믿지 못하는 허구이며 신화가 된다,

여기에도 식민사관이 숨어있다.

 

생각해 보기

 

청동기 시대에 와서야 국가가 세워진다는 것은 한국민이 갖고있는 독특한 관점이다.

이는 일제 식민 사학자들이 단군 조선을 부인하기 위해 창조한 이론인데, 한국 사학계 주류는 아직도 청동기 시대때 비로소 국가가 건국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국사 교과서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이덕일, 김병기 지음 역사의 아침 2006년 18쪽)

 

현제 우리 나라의 교과서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때 개국 했다고 가르친다. 이는 신석기 시대에는 국가의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나온 이론이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묘제인 고인돌의 등장을 지배계급의 성립과 국가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에도 국가가 존재 했다고 보는 것이 현제 세계 학계의 흐름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남미의 잉카, 마야, 아스텍 문명 등인데, 이들 문명은 청동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대 국가라고 인정하고 있다.([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이덕일 , 김병기 지음. 역사의 아침. 2006년, 187쪽)

 

 

교과서 속에는 아직도 단군왕검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 교과서는 "단군이 세운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기원전 2000년 경에서 기원전 1500년 경에 만주 지역과 한반도에 청동기가 보급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청동기 시대라야 고대 국가가 성립 된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보면 , [삼국유사]의 BCE 2333년 단군 왕검의 고조선 건국은 믿을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청동기 새대 전이라서 고대 국가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최근 연구 성과를 통해 본 만주와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2007년 이전까지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는 비파형 동검의 제작 연대를 기준으로 하여 서기전 10세기로 보아왔다. 이 관점은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하나는 비파형 동검과 같이 정밀한 청동기가 제조되기 까지는 매우 긴 청동기 제조기술의 발달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릉 간과하고 있는 점이다. 즉 우리 민족의 청동기 시대 진입 연대는 비파형 동검이 제작된 연대보다 훨씬 빨라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두번째는 요서와 요동을 포함한 만주 지역이 고대 조선의 활동 무대였음을 간과하고 잇다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는 남북한 지역뿐 아니라 만주 지역까지 포함하여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학계에서 고고학작 발굴 결과를 기초로 고대 조선의 강역이 만주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는 최근의 발굴 성과에 의하면 서기전 2400년 겅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와 전남 영암군 장천리 등에서 서기전 2400년 경의 청동기 유적이 발굴 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를 서기전 2400년 경으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와 주장들이 사실로 확인 될경우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왕검의 고대조선 개국 연대와 우리 민족의 청동기 시대 진입 연대가 거의 일치하게 된다.([한국 고대사, 바꿔 써야 할 세 가지 문제] 203~204쪽)

 

 

현제까지 발굴된 만주의 청동기 유적.

 

신석기 청동기 병용시대 : 소하연 문화 (BCE 3000~BCE 2000)

청동기 시대 : 하가점 문화 (BCE 2000~BCE 1500)

만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진입 연대는 최근의 발굴 성과에 의하면 서기전 2400년 경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 고대사, 바꿔 써야 할 세 가지 문제] 204쪽)

 

현제까지 발굴된 한반도의 최고 청동기 유적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와 전남 영암군 장천리 유적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국의 고고학자 사라 넬슨은 경기도 양수리 고인돌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무려 기원전 2665~2140년 것들이라는 견해를 밝힌바 있다. 양수리 유적은 하나의 표본이라고 볼때 고인돌 묘장법이 시작된 것은 그 이전으로 소급되고 청동기 개사 연대도 따라서 올라길수 있는 것이다.([고조선 사라진 역사]성심제)

 

양수리 고인돌 유적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 동석 마을에 이르는 길가에 고인돌 10여기가 산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5기가 팔당땜 공사로 문화재 관라국에서 1972년 발굴 조사 되었다. 고인돌 상단에는 북두칠성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다.